AI

AI가 다 해줄 텐데, 내 아이에겐 뭘 가르쳐야 할까

나는 소프트웨어로 밥을 먹고 산다. 그리고 지난 4년간 AI가 내 일의 한 부분씩을 조용히 가져가는 걸 지켜봤다 — 코드를 쓰고, 컴파일하고, 테스트하고, 이제는 배포까지. 개발자로서는 그 사실과 화해했다. 그런데 도저히 화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그 변화가 부모인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몇 년을 배워서 겨우 하게 된 일을 기계가 벌써 이만큼 해낸다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대체 내 아이에겐 뭘 가르쳐야 하나? 미래가 AI가 그냥 다 해주는 세상이라면, 왜 아이를 붙잡고 수학 문제를 풀리고 받아쓰기를 시키고, 언젠가 프로그래밍까지 가르쳐야 하나?

깔끔한 정답은 나도 없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거의 무엇보다 오래 고민했고, 결국 나는 질문 자체가 함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어떻게 생각을 정리했는지 적어본다.

참고: 이 글은 개발자이자 부모로서 쓴 개인적인 의견이며, 전문적인 교육·진로 조언이 아닙니다.

질문 속에 숨은 함정

“AI가 다 할 텐데 무슨 소용이야?”라는 말은 목표가 가만히 멈춰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목표는 멈춰 있지 않다. 나는 아이를 어떤 직업에 대비시키는 게 아니다. 앞으로 60~70년을 살아갈 아이를, 그 사이 몇 번이고 통째로 뒤바뀔 기술 지형 위에서 준비시키는 것이다.

시간 규모를 생각해보자. 내가 어릴 때 “컴퓨터를 배운다”는 건 지금 보면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때 배운 구체적 기술은 내가 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낡아버렸다. 낡지 않은 건 그 밑에 깔린 습관이었다 — 새 도구를 스스로 익히고, 문제를 잘게 쪼개고, 빈 화면 앞에서 겁먹지 않는 것. 만약 내가 그 시절의 도구 하나에만 최적화됐다면, 나는 열두 살에 은퇴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직한 질문은 “어떤 직업이 AI에서 살아남나?”가 아니다. **“내가 아직 상상도 못 하는 도구들이 평생 바뀌는 동안에도 가치를 잃지 않는 건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뜻밖에 안심되는 답을 준다.

숫자가 실제로 말하는 것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 — 1,400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1,000곳 이상의 고용주 조사 — 는 우리가 가진 것 중 합의된 전망에 가장 가깝다. 표제 숫자는 처음엔 무섭게 들린다. 2030년까지 오늘날 일자리의 22%가 뒤바뀌고, 9,200만 개가 사라진다. 하지만 1억 7,000만 개가 새로 생겨 순증 7,800만 개다. 그리고 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의 5분의 2 가까이가 5년 안에 바뀐다.

내가 자꾸 되돌아오는 건 마지막 숫자다. 이 수치는 “네 역량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역량이 끊임없이 갈린다고 말한다. 그런 세상에 아이를 준비시킨다는 건, 정답을 미리 장착시키는 게 아니라 계속 바뀔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 대목이 여기 있다. WEF가 2030년을 향해 가장 빠르게 부상하는 역량을 순위 매겼을 때, 맨 위는 예상대로다 — AI와 빅데이터, 사이버보안, 기술 리터러시. 그런데 바로 그 아래에, 어떤 기계도 아직 근처에 못 온 역량들이 자리한다.

  • 창의적 사고 (4위)
  • 회복탄력성·유연성·민첩성 (5위)
  • 호기심과 평생학습 (6위)
  •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7위)
  • 분석적 사고 (9위)

반대로 가장 가파르게 쇠퇴하는 역량은 기계적인 것들이다. 단순 암기로서의 읽기·쓰기·셈, 손끝의 정밀함, 그저 성실함과 세심한 주의력. 이 목록을 다시 읽어보라. 기계가 이제 더 잘하는 것 — 암기, 기계적 정확성 — 은 내려간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 — 호기심, 판단, 사람과 함께 일하는 능력 — 은 올라간다. 데이터가 부모에게 조용히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실제로 거는 세 가지

그래서 불안을 걷어내고 나면, 내 아이에게 투자하기로 정한 건 이것이다. 커리큘럼이 아니라, 오래 가는 세 가지 베팅.

1. 배우는 법을 배우기. 특정 기술의 반감기가 짧아지고 있다면, 유일하게 복리로 불어나는 건 메타 능력이다 —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새것을 빠르게 스스로 익히는 힘. 이건 물렁한 소리가 아니다. “호기심과 평생학습”은 고용주 목록의 문자 그대로 6위다. 나는 아이가 어떤 특정 사실을 외우는 것보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즐기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몇 년마다 스스로를 공짜로 재건축한다. 지시를 따르는 법만 배운 아이는 매번 누군가에게 다시 훈련받아야 한다, 평생.

2. 판단력 — 무엇이 좋은지 아는 것. 이건 내 본업이 가르쳐준 것이다. 요즘 AI는 무한한 그럴듯함을 찍어낸다. 그럴듯한 코드, 그럴듯한 글, 그럴듯한 계획. 하지만 그중 무엇이 실제로 좋고, 실제로 맞고, 정말 내보낼 만한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내 일에서도 기계가 사다리를 한 칸씩 올라오는 동안, 끝까지 내 몫으로 남은 희소한 것은 늘 같았다. 결과물을 보고 *“그래, 이거 — 저건 아니고”*라고 말하는 순간. 취향. 분별력. 나보다 천 배 빨리 찍어내는 기계의 좋은 편집자가 되는 능력. 나는 아이가 그 편집자가 되길 바라지, 생산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3.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함께. 공감, 소통, 방의 공기를 읽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능력 — 미래학자 시네이드 보벨이 멋지게 표현한, “공짜로 길러줄 수 있는” 바로 그 역량들이다. 돈이 안 들면서, 목록에서 가장 자동화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콘텐츠가 무한하고 값싼 세상에서는, 진짜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희소한 자원이 된다. 나는 아이가 사실을 가장 많이 읊는 사람보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래도 코딩은 가르쳐야 할까

나는 개발자라 저녁 모임에서 실제로 이 질문을 받는다. 솔직한 답은 그렇다 —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문법을 빨리 타이핑하는 아이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기계가 이긴다. 나는 코딩을 체스나 악기를 가르치듯 가르치겠다 — 특정한 사고방식을 위한 체육관으로서. 코딩은 흐릿한 문제를 정확한 단계로 쪼개게 만들고, 내 감정 따위 봐주지 않는 버그를 마주하게 하고, 인과관계를 가차 없이 정직하게 배우게 한다. 이 인지적 운동은, 설령 앞으로 어떤 인간도 for 반복문을 손으로 안 쓰게 되더라도 살아남는다. 업계 스스로도 발견하고 있듯, 프로그래밍의 미래는 코드 타이핑에서 설계·판단·무엇을 만들지 아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결국 이건 후드티를 걸친 2번 베팅일 뿐이다.

내가 일부러 하지 않는

나는 뜨거운 기술을 좇지 않는다. 2년 전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세기의 직업이 될 거라 했지만, 지금은 더 나은 모델에 절반쯤 흡수된 각주다. 오늘의 AI에 아이를 최적화한다면, 나는 아이가 졸업하기도 전에 낡아버릴 도구에 아이를 훈련시키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그 고전적 질문 —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을 그만 물었다. 보벨이 나보다 잘 표현했다. 우리는 직업과 정체성을 분리하고, 대신 아이에게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 직업 명칭은 이미 움직여버릴 노동시장의 한 컷 스냅샷이다. 반면 풀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는, 도구가 아무리 바뀌어도 늘 진짜 어딘가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결론

내가 결국 이해한 건 이것이다. “AI가 다 할 거야”는 잘못된 두려움이다. 왜냐하면 라는 것이 중요한 무엇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는 과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원하거나, 그게 옳은지 신경 쓰거나, 그것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책임을 느끼거나, 애초에 무엇을 할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 영역 전체 — 원하고, 신경 쓰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 — 는 손대지지 않은 채로 있고, 바로 그곳이 내가 아이를 살게 하려는 자리다.

나는 기계보다 계산을 잘하는 아이를 만들려는 게 아니다. 그 경주는 이미 졌고, 애초에 잘못된 경주였다. 나는 무엇을 계산할 가치가 있는지 아는 사람을 만들려 한다 — 기계가 찍어낸 무한한 답의 물결을 보고도, 인간의 판단과 인간의 양심으로 “그래, 이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능력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내 사다리 위로 그 선이 해마다 올라가는 걸 지켜본 개발자로서, 그건 기계가 가져가는 걸 한 번도 못 본 유일한 칸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칸이다.


자주 묻는 질문

AI가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특정 기술을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나요? 아니요. 다만 가르치는 목적이 바뀝니다. 코딩이나 수학 같은 특정 기술은 취업 훈련보다, 문제해결·논리적 사고·판단력 같은 오래 가는 능력을 위한 운동으로서 배울 가치가 있습니다. WEF 데이터를 보면 가장 빠르게 쇠퇴하는 건 암기·기계적 정확성 같은 것이고, 창의성·호기심·분석적 사고 같은 인간적 역량은 오히려 부상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미래에 강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WEF 미래 일자리 2025, OECD 교육 연구, 그리고 대부분의 미래학자에게서 반복되는 답은 이렇습니다. 호기심과 끊임없이 배우는 능력, 창의적·비판적 사고, 판단력과 분별력, 회복탄력성과 적응력, 그리고 소통과 공감 같은 인간적 역량. 이것들은 바로 자동화가 가장 어렵기 때문에 가치를 유지합니다.

AI 시대에도 아이가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 저를 포함한 많은 개발자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 단, 직업 훈련이 아니라 인지 훈련으로서요. 코딩은 문제를 쪼개고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며, AI가 실제 문법을 더 많이 쓰게 되더라도 그 가치는 남습니다. 일의 무게중심은 코드를 쓰는 것에서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결과가 좋은지 판단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왜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를 그만 물어야 하나요? 직업 명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안정된 노동시장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미래학자 시네이드 보벨은 대신 아이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를 물으라고 제안합니다. 이 틀은 기술 변화에도 살아남고, 아이의 정체성을 AI가 바꾸거나 흡수할지 모를 특정 역할에 묶어두지 않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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